리마인드웨딩 사진촬영 수기 (한지화&최승현 부부의 이야기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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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회 981회 작성일 19-12-10 15:21본문
<우리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>-by. 한지화
지난 10월 말쯤, 강새롬 쌤이 서예교실로 와 “어머니, 혹시 웨딩촬영 하시겠어요?” 라고 했다. 난 두 번 생각도 않고 “그래요.”라고 했다.
촬영일이 마침 결혼기념일을 며칠 앞둔 11월 11일이다. 38년 전 11월 15일 난 결혼식을 했다. 비가 부실부실 오던날 친구와 함께 예식장에 도착하여 신부화장을 하고 그날 처음 속눈썹을 붙였다. 눈이 거북한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.
38년의 결혼생활. 딸아이 둘 낳고 적은 살림살이로 시작하여 아이들 클 때 맘졸임과 걱정, 내가 키우는 딸들의 마음에 혹여 이 애미의 장애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까 싶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이었다. 세상에 장애를 안고 61년 사는동안 내가 맘아픈 것 보다, 어느 아픔보다 큰 아픔은, 나로 인해 자식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 세상 가장 큰 아픔이었다.
이제 돌이켜 지난날이 슬라이드를 보는 것처럼 회상하지만 어느 누가 내게 묻는다. 어느때로 돌아가면 좋겠냐고. 난 싫다. 그 어느날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. 딸들이 이제 다 자라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에 난 그냥 마냥 보기 좋다.
나에게 다시 결혼이라는 것을 맞이하고 보니 생의 결혼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.
드레스를 입으려 생각하니.. 나의 살..살..! 난 웃음을 띌 수 밖에 없었다. 울룽불릉, 머리는 희여져서 보기 흉하고, 얼굴도 예전같지 않아 망설여지지만 그냥 있는모습 그대로를 보고팠다. “황혼”은 이제 어색하지 않을 단어인데 아직은 좀 어색하다.
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2주 정도를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설렜다가 걱정이 되었다가 했다. 그래도 웨딩이니 흰머리를 고수하는 남편에게 염색을 권하고 난 파마를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서서히 한다. 웃음이 번지는 나날을 보냈다. 남편을 졸라 염색을 시켰는데 옻이 올라 병원을 가야했던 신랑.. 내 욕심에 미안하지만 젊어보여 나는 좋다.^^
자유복은 청바지에 흰 블라우스로 정하여 가지고 갔다. 촬영을 하러 가는 곳이 논현동이라고 하여 “응? 서울 논현동?”이라며 놀라니 “인천에도 논현동이 있어요~”라고 하는 말에 깔깔 웃었다.
도착해서 봉사자분이 나와 남편의 머리와 화장을 해주셨는데 얼굴이 바뀌어가는 모습에 기분도 좋고 신기했다.
드레스를 갈아입으며 내 몸에 드레스를 입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. 기둥을 잡고 하녀가 등 뒤에서 코르셋을 끈을 잡아당기는 장면 말이다. 나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. 벌어진 등에 천을 대고 끈을 엮어 잡아당겨 없는 허리를 만들어준 도우미 님들 두 분에게 너무 감사하다.
촬영을 시작했다. 나는 들뜬 기분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. 웃지 않으려는 남편은 좀 쑥쓰러워했지만 촬영기사분이 이리저리 포즈를 유도해주어 웃음이 떠나지 않고 촬영해나갔다.
공공칠 컷, 장미덩굴의 컷, 석양의 볕을 받으며 한 컷.. 한컷 한컷 넘어가는 것이 인생을 살아온 날의 보상을 넘기며 난 마냥 즐거운 날을 보냈다. 아직 보정본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결혼기념일을 몇 일 앞둔 날 이루었던 그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.
동구한마음종합복지관 여러분들, 결혼기념일을 앞둔 내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어 너무 고마워요. 행복한 날을 보냈어요.
- 어느 멋진날, 한지화 올림 -